이순희 - 2018 빌 게이츠의 화장실

인도에서 온 편지
안녕, 내 이름은 쿠마리, 인도의 작은 농촌 마을에 살아. 나이는 열세 살이야. 나는 늘 학교에 가는 게 괴로워. 공부하기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야. 화장실이 없는 학교에 다니는 게 나는 너무 싫어. 물론 우리 집에도 화장실이 없어. 그래도 집에서 볼일을 보고 싶을 때는 언니나 동생과 함께 밖에 나가니까 그나마 괜찮아. 사람 눈에 잘 뜨이지 않은 곳을 찾아 서로 지켜봐주면서 번갈아 볼일을 봐. 남자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 마당 근처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볼일을 봐. 하지만 여자 아이들은 아무리 급해도 그럴 수 없지. 학교 마당 가까이서 볼일을 보는 건 절대로 안 돼. 좀 더 먼 곳, 사람 눈에 뜨이지 않는 곳으로 가야 해. 더 짜증나는 건 짓궂은 남자아이들이 볼일을 보러가는 여자아이들을 따라와 놀려대는 일이야. 그럴 때는 남자아이들이 따라오는 걸 포기할 때까지 한참을 걸어가야 해. 그러다보면 수업이 시작하기 전까지 돌아올 수 없을 때도 있어. 어떨 때는 짜증이 나서 학교로 가지 않고 그냥 집으로 가기도 하지. 설상가상으로 나는 몇 달 전에 초경을했어. 아, 이건 정말 어쩔 수가 없어. 생리가 끝날 때까지 학교를 가는 걸 포기할 수밖에. 요즘 우리 반에는 초경을 맞은 뒤로 학교에 나오지 않는 여자아이들이 여럿 있어. 그 친구들은 앞으로도 영영 학교에 나오지 않을지도 몰라. 우리 학교에는 여자 선생님이 한 분도 계시지 않아. 아마 화장실이 없어서 그럴 거야. 선생님도 사람인 이상 볼일을 봐야 할 텐데 화장실 없는 학교에 오고 싶을 턱이 없지. 난 학교에도 집에도 깨끗한 화장실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럼 아무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을 텐데.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수많은 발명들이 개발도상국 사람들 곁에는 아예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아니, 애초에 개발도상국 가난한 사람들의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고 개발되었기 때문에 그들에겐 아무 소용이 없는 발명들도 많다. 지금 우리가 쓰는 수세식 화장실은 200년 전에 개발된 것이지만, 이런 화장실은 하수도 시설 등의 기간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세계 대부분의 지역들에는 보급될 수 없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결국 그런 지역들에서는 야외 배변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가 나타난다. 해마다 무려 150만 명의 아이들이 오염된 음식과 물 때문에 병에 걸려 목숨을 잃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 가난한 사람들이 과학 발전의 1순위 수혜자가 되게 할 방안을 하나라도 더 찾아내야 한다.
— 2013년 4월, 빌 게이츠 www.gatesnotes.com

p. 10,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