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주의는 국가보안법의 명칭으로 제도화되었다. 그것은 분단국가 한국에서 보수 대 진보의 대립을 규정하는 핵심적 균열 라인이다. 국가형성기에 나타난 보안법은 이후 한국의 정치적 대립구도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국전쟁 이후 유신을 포함한 독재와 권위주의 체제가 뿌리를 내리면서 반공주의는 스스로를 더욱 강고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2004년 반공주의는 진보 세력의 도전을 물리친 후 여전히 보수 세력을 결집시키는 초점 역할을 하고 있다.
반공주의가 헤게모니 이념으로 작동하게 된 배경은 분단과 한국전쟁이다. 한국전쟁이 보여주듯 북한의 존재로 공산주의는 궤멸해야 할 적으로 인식되었다. 북한의 현실적 공산주의가 위협으로 존재하는 이상 남한에서 일체의 공산주의 이념이나 운동은 인정되지 않았다. 학교나 사업장에서 반공은 하나의 신화로 존재했다. 정치적으로는 반쪽 지형만이 가능했다. 사회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투표자의 선택지에서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선거에서는 중도부터 극우까지의 정당만이 경쟁할 수 있다. 반쪽의 지형은 자유민주주의가 신봉하는 선택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이다. 선택을 허용하는 경쟁의 자유는 최소한의 민주주의의 기초이며, 민주화 지수를 규정한다(Lijphart, 2012: Przworski 외 , 1996).
반공주의는 북한과 동전의 양면을 구성한다. 반공주의는 분단이라는 현실적 조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북한의 존재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반공주의는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과정의존적 산물이라는 점에서 자기강화적이다. 반공국가는 한국전쟁을 거쳐 뿌리를 내렸고 독재와 권위주의 시기에 정치적으로 더욱 강화되었다. 반공주의는 그 자체로서 정치적 도전 세력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는 세력이 없다. 반공주의를 철폐하려는 정치적 기업가는 진보 세력이다. 그러나 반공주의는 진보의 성장을 금지하며, 이는 한국에서 사회당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다. 노동시장에서도 노조의 역할과 위상이 취약하기 때문에 정치세력화하기가 불가능하다(강명세, 2014). 정치시장에 반공주의에 저항하고 반대할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조건에서 반공주의는 보수 세력의 상징적 기초를 형성한다. 보수 세력은 반공주의를 통해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했으며, 민주화 이후에도 반공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다. 어느 집단도 유리한 이념과 제도를 포기하지 않는다. 불가피한 상황으로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조건이 아닌 이상 지배 이념은 약화되지 않는다.
pp. 158, 161,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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