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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카렌 암스트롱 - 2023 성스러운 자연

by 이니샬라 2024. 8. 25.

 
우리는 아름다운 곳에 서 있지만, 그곳에 머물지 못한다.
 
강물 소리와 바람 냄새가 스며드는 순간에도 손은 카메라를 향하고, 눈은 화면을 스크롤한다. 사진은 쌓이지만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는다. 풍경은 기록의 대상이 되고, 우리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지 못한 채 배경으로 밀려난다.
 
이런 모습은 단지 습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연을 대하는 방식의 근본적 변화다. 예전에는 산과 강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우리는 그 말에 귀 기울이며 숨을 맞추었다. 이제는 자연이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되었고, 우리는 그 플랫폼을 소비한다. 소비는 이해를 덜어내고, 이해가 사라진 자리에는 거리감만 남는다.
 
오래된 신학과 영성은 자연을 다른 눈으로 보았다. 자연은 단순한 물체가 아니라, 존재의 깊은 자리와 닿아 있는 곳이었다. 산맥의 침묵이나 강가의 반짝임은 그 자체로 의미였고, 그 의미는 우리를 작게 만들기도 하고 넓게 만들기도 했다. 자연 앞에서 느끼는 경외는 우리를 분리된 주체로 남겨두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과의 연결을 통해 우리 존재의 경계를 다시 묻고, 서로의 숨결을 확인하게 했다.

오늘의 문제는 기술이나 정책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탄소 배출을 줄이고 과학자의 경고에 귀 기울이는 일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리는 자연을 다시 한 번 ‘경외의 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자연을 단지 관리하거나 이용할 대상으로 보는 태도는, 아무리 효율적인 해결책을 마련해도 지속되기 어렵다. 마음이 닫혀 있으면 행동도 오래가지 못한다.
 
작은 연습들이 큰 변화를 만든다. 사진을 찍기 전에 눈으로만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 계절의 변화를 손으로 느끼는 의례, 길가의 풀 한 포기를 이름 불러주는 습관. 이런 일들은 기술적 해결책과 나란히 가야 한다. 자연을 향한 우리의 태도가 바뀌면, 정책과 과학이 닿는 곳도 달라진다. 행동은 더 깊은 뿌리를 얻고, 선택은 더 오래 지속된다.
 
강가에 앉아 물결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 물결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도록 잠시 비워둘 수 있다. 사진은 그 순간을 붙잡아 둘 수 있지만, 붙잡는 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때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나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남긴다. 자연은 우리에게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존재의 한가운데로 들어오는 길이다. 그 길을 다시 걷는 일은, 결국 우리 자신을 다시 만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