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이 공동체를 흔들 때가 있다. 그 파문은 잔물결처럼 퍼져 나가 오래 함께한 사람들의 얼굴을 낯설게 만들고, 서로를 의심하게 한다. 강단에서 나온 말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된다.
교회 공동체는 본래 서로 기대고 돕는 곳이다. 그런데 권력이 한 사람에게 쏠리면 그곳은 쉽게 균열이 생긴다. 잘못이 드러났을 때 진심 어린 사과가 아니라 방어와 결속의 도구가 되면, 용서 대신 분열이 남는다.
말은 힘은 세다. 확신에 찬 목소리는 진리처럼 들리고, 반대 의견은 배제된다. 그렇게 ‘우리’와 ‘그들’이 나뉘고, 오랫동안 함께한 교우는 적처럼 느껴진다. 누군가를 악의적으로 ‘이단’이나 ‘교회 파괴 세력’으로 규정하면 대화는 멈추고 관계는 깨진다.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은 깊다. 신앙 공동체에서 받은 배신감은 단순한 분노를 넘어 삶의 기반을 흔든다. 법원이 권리를 인정해도,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제도가 해결해 주지 못한다.
권력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행동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할 때가 있다. 그런 합리화는 양심의 소리를 덮고,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게 만든다. 반복되는 자기정당화는 공동체를 병들게 한다.
그럼에도 일부는 남고 일부는 떠난다. 남은 이들은 상처를 안고 신앙을 이어가고, 떠난 이들은 다른 길을 찾는다. 누구에게나 분노와 슬픔이 있지만, 분노만으로는 회복되지 않는다. 회복은 더 섬세한 손길과 시간이 필요하다.
회복을 위해서는 개인의 치유와 제도의 변화가 함께 지속되어야 한다.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상담과 돌봄이 필요하고, 교단의 투명한 조사와 책임 있는 절차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공동체는 다시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서로를 적으로 보지 않고, 상처를 말하게 하고, 진심으로 경처할 때에야 서로를 품을 수 있다.
한 사람의 잘못이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지만, 한 사람의 진심어린 사랑은 공동체를 다시 세울 수 있다. 느리더라도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길이 결국 신앙공동체로 다시 돌아오도록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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