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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엘리 위젤 - 2014 샴고로드의 재판

by 이니샬라 2025. 12. 25.

 

 

 

샴고로드의 밤은 길고, 말은 무겁다.


불이 꺼진 여관 구석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말보다 깊은 침묵을 나눈다. 그 침묵은 단순한 고요가 아니다. 사라진 이름들, 꺼진 촛불들, 돌아오지 못한 발걸음들의 무게가 그 안에 쌓여 있다. 우리는 그 무게를 어깨에 지고 걷는다. 걸을수록 땅은 차가워지고, 하늘은 더 멀게 느껴진다.

 

이 극은 신을 법정에 세운다. 그 상상은 도발적이다. 하지만 그 도발은 분노에서 나온다. 분노는 질문이 되고, 질문은 재판이 된다. 말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말은 이미 닳아버렸고, 남은 것은 묻는 일뿐이다. 묻는다는 것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포기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심문을 시작한다. 신의 침묵을 향한 심문은 곧 우리 자신을 향한 심문이기도 하다. 누가 책임을 지는가, 누가 응답할 것인가, 우리가 응답을 요구할 자격이 있는가.

 

무대 위 인물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고통을 말한다. 어떤 이는 분노로, 어떤 이는 조롱으로, 어떤 이는 체념으로 말한다. 그러나 모든 목소리 밑바닥에는 같은 질문이 흐른다. 왜 이런 고통이 허용되었는가? 이 질문은 신학적 논쟁을 넘는다. 인간의 눈에 보이는 불공평함과, 인간의 귀에 들리는 침묵에 대한 항의다. 위젤은 때로 이 항의를 희극처럼 포장하고, 때로는 날카로운 풍자로 드러낸다. 웃음은 고통을 견디게 해주지만, 그 웃음 뒤에는 더 깊은 상처가 숨는다.

 

이 작품은 절망을 솔직한 말로 표현한다. 위젤의 문장은 간결하고 반복적이다. 그 반복은 상처를 손으로 더듬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같은 말을 여러 번 되뇌며, 그 말의 가장자리에서 진실을 찾으려 한다. 진실은 한 번에 드러나지 않는다. 질문과 응답 사이, 침묵과 울음 사이, 재판의 망설임 속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신을 피고로 세운다는 상상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요구한다. 하나는 용기다. 신에게 목소리를 내는 것은 오래된 믿음을 흔드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겸허함이다. 신을 재판에 세우는 일은 우리가 신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신의 전지전능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의 침묵 앞에서 인간의 말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고백하는 것이다. 그 고백은 비난이자 탄원이며, 동시에 구원을 바라는 소망이다.

 

이 극이 남기는 것은 결론이 아니다. 끊임없는 질문이다. 질문은 때로 상처를 더 벌리지만, 그 상처를 통해 우리는 서로를 더 분명히 본다. 고통받는 이의 얼굴을 마주하는 일은 불편하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없다면 우리는 쉽게 잊고 넘어간다. 위젤은 잊지 말라고, 쉽게 넘어가지 말라고 우리를 붙잡는다. 그는 말한다. 책임을 묻지 않는 신앙은 인간을 배반할 수 있고, 신을 묻는 인간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신앙도 인간을 배반할 수 있다고.

 

마지막으로, 이 희곡은 작은 희망을 남긴다. 희망은 거창한 약속이 아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일, 침묵 속에서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일이 희망이다. 재판이 끝나든 끝나지 않든, 우리가 서로에게 묻고 서로의 대답을 기다리는 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샴고로드의 밤은 여전히 길지만, 함께 걷는 발걸음이 있다면 우리는 완전히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