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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조르조 아감벤 - 2015 빌라도와 예수

by 이니샬라 2025. 8. 19.

 
빛과 그림자 사이, 돌로 쌓인 재판정이 있다. 낮은 목소리들이 오가고, 한 사람의 몸이 그 중심에 놓여 있다. 그 몸은 단지 한 사람의 고통만을 담고 있지 않다. 조르조 아감벤은 우리에게 묻는다. 누가 심판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심판은 무엇을 정당화하는가.
 
보통 우리는 형벌을 개인의 잘못에 대한 결과로 본다. 누군가 법을 어기면 사회가 벌을 준다. 하지만 예수의 재판은 이 단순한 생각을 흔든다. 재판을 내린 사람이 정당하지 않다면, 그 벌은 ‘징계’가 아니라 ‘불의’다. 아감벤은 이 점을 통해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진 폭력이 정당한지 묻는다.
 
빌라도의 재판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제국의 법과 권위가 배경에 있고, 그 권위의 정당성이 판결의 의미를 바꾼다. 로마의 법적 기반이 흔들렸다면 빌라도의 판결은 권한 없는 명령에 불과했을 것이다. 아감벤은 재판의 정당성을 단지 제도적 합법성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는 누가 모든 사람을 심판할 수 있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한 사람의 몸이 온 인류의 징계로 읽히는 순간, 고통은 개인을 넘어 집단의 문제로 확장된다. 이것은 두 얼굴을 가진 상상이다. 하나는 구속과 회복의 약속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의 정당화다. 구원의 이야기로 포장된 권력이 때로는 억압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징계’와 ‘불의’는 다르다. 징계는 교정과 회복을 뜻하고, 불의는 억압과 파괴에 가깝다. 제도와 법, 신학은 이 간격을 메우려 한다. 하지만 이런 요소는 서로 얽혀 있다. 제도의 정당성은 신학적 이야기로 강화되고, 신학은 제도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오늘날에도 같은 질문이 남아 있다. 누가 우리를 심판하는가. 어떤 권위가 정당한가. 그 권위는 어떤 이야기로 자신을 정당화하는가.
 
빌라도의 재판을 통해 현대의 권력과 판단 문제를 드러낸다. 권력은 늘 자신을 정당화할 이야기를 필요로 하고, 그 이야기는 종종 고통받는 사람의 몸을 매개로 만들어진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사람의 얼굴이다. 제도와 이론 속에서도 우리가 마주해야 할 것은 고통받는 사람이다. 그 얼굴을 외면하지 않는 것, 고통을 단지 이론적 사례로만 보지 않는 것.
 
이것이 아감벤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