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7월, 미국인 외과의사 토마스 헤일과 소아과 의사인 아내 신시아는 두 어린 아들을 데리고 네팔 카트만두에 첫발을 내딛었다. 전문의가 거의 없는 오지였기에 자신들이 큰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히말라야 산기슭의 앰피팔 산골 병원에 부임하자마자 그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열악한 의료 시설과 위생 환경, 언어 장벽 앞에서 그들이 가진 의학 지식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수술 기구조차 없는 병원에 가기 위해 군 병원 창고에서 폐기 직전의 도구들을 고철값에 긁어모았다. 낯선 오지에서 삶의 위안을 얻고 아이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려고 무거운 피아노까지 챙겼다. 네팔의 가파른 산길을 따라 짐꾼들과 함께 피아노를 짊어지고 오르는 동안, 원주민들은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물건에 혀를 내둘렀다. 힘들게 가져간 피아노에서 소리가 나자 사람들은 신기해하면서도 낯선 서양 악기 소리에 얼어붙었다.
저자가 가장 큰 시험이었다고 밝힌 계기는 '소 상처 사건'이었다. 정성껏 가꾼 채소밭을 짓밟는 가축을 쫓아내려다 실수로 힌두교의 신성한 소 다리에 상처를 입혔고, 마을 주민들의 분노와 법적 처벌이라는 시련에 직면했다. 감옥에 갇힐 위기와 막대한 보상금 청구라는 상황 속에서 저자는 자신이 무언가를 나눠주러 온 구원자가 아니라, 현지 문화와 규범 앞에 한없이 무지했음을 깨닫는다. 밤새 소의 상처를 지혈하고 봉합하며 기도하던 시간은 위기를 넘어 낯선 문화 속으로 깊이 들어가기 위한 과정이었다.
"우리는 중요한 사람이고, 교육을 잘 받았으며, 주민들에게 줄 것이 많다는 깊은 우월감을 떨치기 어려웠다. 그러나 우리의 한계를 발견하고 그들의 장점과 능력을 이해한 후 비로소 깨달았다. 진정한 행운을 잡은 것은 여기에 오게 된 바로 우리 자신이었음을."
이 기록은 어떠한 미화도 없는 솔직함에 있다. 약에 취한 요리사와의 소동, 쥐와 거머리, 파리 떼와의 사투, 서툰 네팔어로 생긴 오해 속에서 자신의 이기심과 무기력함을 숨기지 않는다. 나아가 문화적 마찰을 현지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뿌리 깊게 남아 있던 서구 중심적 사고와 특권의식을 있는 그대로 돌아본다. 상대를 하대하던 그는 현지에서 위기를 겪으며 서로외 대한 유대감을 베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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