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은 먼 미래의 사건을 예측하거나 시기를 추정하는 교리가 아니다. 성도가 살아가는 윤리적 태도와 신앙의 방향을 바로잡는 나침반이다. 그렇기에 왜곡된 종말관을 경계하고 성경에 뿌리를 내린 ‘올바른 종말론’을 정립하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종말론의 부재는 삶의 방향을 불안과 도피로 몰아가지만, 바른 종말론은 교회의 사명을 선명히 하여 삶의 시각을 바로잡아 준다. 조지 엘던 래드(George Eldon Ladd)는 세대주의적 배경에서 출발했음에도 종말론을 개혁신학적 관점에서 훌륭하게 정립했으나,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에서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한국 교회에서 반복되어 온 종말론의 왜곡은 이단 단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정 날짜를 명시하지만 않을 뿐, 종말을 공포와 위기 혹은 현실 도피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기성 교회 내부에도 깊이 파고들어 있다. 이러한 오해는 묵시문학의 구속사적 맥락과 상징성을 배제한 채, 성경의 종말을 세상 끝의 이정표나 비밀 암호집으로 환원해 버리는 날조된 해석에서 비롯된다.
래드는 하나님 나라를 ‘이미(Already)’ 시작됐지만 ‘아직(Not Yet)’ 완성되지 않았다고 정의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와 십자가,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는 역사 속에 현현했다. 다만 그 나라의 최종적인 완성은 재림의 때로 남아 있다. 따라서 성경적 종말론은 현실의 책임을 외면하는 구실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현재를 성실히 살아가게 만드는 동기가 된다. 왜냐하면 다가올 미래의 소망은 지금을 비추는 빛이며, 참된 신앙은 그 소망을 일상에서 증명해 나가기 때문이다.
종말의 의미를 미래의 특정 시점에 국한하면 신학적 폐단이 발생한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악용해 신앙의 언어로 사람을 통제하거나, 사회적 고통과 구조적 악을 종말의 징조나 영적 전쟁으로 몰아붙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성도의 책임은 사라지고, 신앙은 세상과 차단된 채 개인의 영혼 구원에만 안주하여 내세지향으로 빠진다.
이러한 왜곡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올바른 종말론의 확립은 필수적이다. 래드의 종말론은 미래의 소망과 현재의 책임을 하나로 통합하여 올바른 이정표를 제시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바라는 성도라면 현실에서 사랑과 정의를 구현하며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세워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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