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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기독교는 누구를 위한 종교인가? 메츠의 「그리스도교, 부르주아의 종교인가 민중의 종교인가」

by 이니샬라 2026. 8. 19.

교회는 두 겹의 옷을 입는다.

하나는 세련된 외형과 전통, 익숙한 의례로 다져진 두터운 외투다. 대다수 신자는 그 안에서 종교적 안도감과 평온을 누린다. 정형화된 예배 규칙과 손에 익은 의식은 구원을 견고하게 보존해 주는 듯하고, 그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신분을 확인하며 기존의 질서를 지켜내려 한다.

다른 하나는 세상의 비바람에 쉽게 찢길 듯 얇고 가난한 옷이다. 민중의 처절한 고통과 삶의 숨결이 깊게 스며드는 옷이다. 비록 불편하고 쉽게 더러워질지라도, 현장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요한 바티스트 메츠(Johann Baptist Metz)는 교회를 향해 묻는다. 우리는 과연 어느 옷을 선택할 것인가. 따뜻하지만 제도적 외투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상처 입을지라도 민중의 삶터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할 것인가.

참된 회개는 상투적인 고백이나 언어의 유희가 아니다. 내면의 뉘우침은 반드시 구체적인 삶의 발걸음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 걸음은 익숙함를 넘어 거리로 나아가는 것이며, 약자를 섬기고 억눌린 이들과 연대하는 것이다. 은혜는 심미적 선언에 머물지 않고 기득권과 질서를 조용히 뒤흔든다. 그러므로 교회는 구습을 버리라는 시대의 외침 앞에 침묵하거나 주저해서는 안 된다.

민중의 신앙은 정갈하지 않다. 그들의 절규는 예배당의 정적을 깨뜨리고 굳어진 교리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러나 바로 그 거친 소리 속에서 기독교는 생명력을 전달한다. 고통받는 이들의 언어는 그 어떤 신학적 논증보다 날카롭고 간절하다. 교회가 이 울부짖음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신앙의 근본을 외면하는 것이다.

사랑은 안전지대에만 머물지 않는다. 때로는 손을 더럽히고 위험을 감수하며 경계를 넘어선다. 교회가 민중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불의한 구조를 변혁하려는 결단이 요구된다.

진정한 회개는 모두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길 위에서 완성된다. 교회는 스스로 눈높이를 낮추고, 그 고통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세를 낮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