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문명의 옷을 입은 기독교는 인도의 거부감을 자아냈지만, 복음서 속 예수는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선교 현장의 숱한 논쟁과 진통 끝에 도달한 결론은 복잡한 교리나 제도적 시스템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었다.
인도는 서구의 식민 지배를 연상시키는 기독교라는 외래 종교에 적의를 나타냈지만, 예수의 사랑과 희생에는 깊이 매료되었다. 본래 인과응보의 카르마와 운명론에 갇혀 타인을 위한 대속적 고통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던 이들이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저항 운동을 거치며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인도는 간디의 삶을 발판 삼아 십자가 대속의 의미를 이해하는 계기게 되었다.
이러한 재해석을 거치며 예수는 더 이상 백인의 전유물이 아닌, 가장 낮은 카스트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이들을 향한 동양의 스승이자 친구로 받아들여졌다. 서구 신학이 구축한 형식의 껍데기를 벗어던지자, 인도의 영적 잠재력은 예수의 정신과 결합하며 초기 기독교가 지녔던 순수한 생명력을 회복했다.
인도의 이러한 복음 여정은 선교의 본질을 향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선교는 기독교라는 영토나 세력을 확장하는 일이 아니다. 현지의 문화와 삶을 지배하려는 정복자적 태도를 버리고,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비움과 섬김의 길을 현장의 삶으로 재현해 내는 것이다. 서구가 만든 신학적 틀을 강요하는 방식은 타 문화권과의 단절만 초래할 뿐이다. 복음은 교리의 단순한 이식이 아니라, 현지인의 고통과 함께 호흡하는 성육신적 자세여야 한다.
인도의 거울에 비친 예수는 제도와 틀에 갇힌 현대 종교의 한계를 정면으로 비춘다. 그동안 우리가 세상에 전하려 애썼던 것은 예수였는가, 아니면 이기적으로 구축된 껍데기였는가. 이 질문은 오늘날 신앙의 길을 걷는 우리에게 날카롭게 되돌아온다. 복음의 순수성을 되찾고 타자의 고통에 응답하는 성육신적 삶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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