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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박종인 - 2021 매국노 고종

by 이니샬라 2021. 5. 18.

1882년 6월, 1년 1개월치 월급이 밀린 왕십리 가난한 군인들이 임오군란을 일으켰다. 조선 정부가 청나라 군사를 불러 난을 진압했다. 왜 청나라 군대를 불렀는가. 조선에 국방을 맡은 군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2년 뒤 갑신정변 때는 그 정변을 진압한 부대가 누구였나. 청나라 군대였다. 동학농민군을 진압한 군대는 어느 나라 군대였나. 일본 군대였다. 왜? 조선에 군사가 없었으니까. 왜 없앴는가? 고종이 없애 버렸다. 사라진 군대는 어디로 갔나. 고종이 살고 있는 창덕궁과 덕수궁 호위부대로 갔다.
나라는 왜 가난했는가.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벌어졌을 때 이 나라 빚이 1,300만 원이었다. 그 해 나라 예산이 1,310만 원이었다. 왜 한 나라 예산에 맞먹는 빚이 생겼는가. 돈을 물 쓰듯 썼기 때문이다. 누가 썼는가. 고종이 썼다. 어디에 썼는가. 독일제 철모를 사고, 박력 있게 포성을 내지르는 기관총 개틀링건을 사고, 자기 생일 날 예포를 쏠 고물 상선을 사고, 생일상에 올릴 프랑스제 식기를 사는 데 썼다. 500년 전 자기 조상 묘 준경 묘와 1500년 전 자기 조상 할아버지 제단 조경단을 만드는 데 썼다. 그러고도 돈이 모자라는 줄 모르고 무당 굿을 하고 삼천리 금수강산에 돈을 퍼부어 제사를 지냈다. 군사가 사라지고 곳간이 텅 비고 썩은 내가 팔도에 진동하는데, 그는 그 나라를 버리고 일곱 번이나 남의 나라로 도망갈 생각을 했다.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주해 살던 1년 동안 주요 국가 재산을 다 팔아치우고 자기 왕좌를 보전했다.
나라가 사라지던 날, 정확하게는 나라 외교권이 사라지던 1905년 그날, 그 왕은 황실의 안녕을 보전해주는 대가로 그 나라 계약서에 동의했다. 그것 뿐인가. 1910년 나라가 사라지고, 그 나라의 군주로서 부활을 염원하기는커녕 그는 대일본제국 왕족으로 막대한 세비를 총독부로부터 받으며 살았다. 자기 딸보다 어린 여자를 들여서 또 아이를 낳고 살았다. 이게 왕인가. 이게 자주 독립을 염원한 개혁군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