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때로는 축복하고 저주하면서, 때로는 치유하고 꾸짖으면서 소리 없이 사람들의 삶 속을 넘나들었다. 만약 그가 신이 아니라면, 신의 뜻을 거스르는 불경스러운 독설가였을 것이다. 그는 전혀 유순하고 온화하며 고결한 예수는 될 수 없었다. 체스터턴의 말을 다시 한번 인용해보자.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수야말로 가장 자비롭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인류를 사랑했다는 말을 수없이 듣고 있으며,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는 데에 전혀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교회들은 찬바람도는 교리들을 이용해 그러한 인간적인 성품을 숨기고, 교회 조직을 통한 공포를 이용해 그가 인간다워 보이지 않을 때까지 경직시켜 왔다. 이러한 일은 감히 또다시 말하건대, 진실을 뒤집어엎는 일에 가깝다.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이미지는 거의 완벽할 정도로 부드럽고 자애롭다. 그외 대부분의 것들과 마찬가지로 성서들 속의 그리스도의 이미지는 실제로 그렇다. 성서 속에 등장하는 그는 우리들의 상처난 가슴을 어루만져주기 위해 비통함이 배어 있는 아름다운 말들로 연민을 드러내 보인다. 하지만 그가 단지 그렇게 오직 한 가지 방식만으로 말했던 것은 절대 아니다…. 그리스도가 분노에 찬 모습을 보여줄 때를 그려보면 섬뜩하고 오싹하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다. 길모퉁이를 돌거나 장터로 나아갈 때 독사의 무리들과 마주쳐 돌처럼 굳어 망연자실해 하는 모습이거나, 위선자의 얼굴을 바라보는 그 표정을 그려볼 때에도 감당하기 힘든 무엇인가가 있다. ‘복음서’에는 불가해한 침묵이나 풍자적인 반문 등과 같은, 분명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느닷없는 몸짓들로 가득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제대로 모르고 있을 뿐이다. 분노의 표출도 마치 갑자기 몰아치는 폭풍우처럼 우리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 자신만의 차원 높은 기상도를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인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베드로는 그리스도가 용서를 베풀며 ‘나의 어린 양들을 먹이라’고 일렀던 바로 그 베드로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마치 악마라도 되는 듯이 그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분노 속에 ‘사탄아, 내 뒤로 물러서라’며 울부짖었던 그 베드로는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암살하려 했던 예루살렘을 향해서는 오직 사랑과 연민만을 보이며 애석해 했을 뿐이다. 우리들은 그 어떤 영적 분위기 혹은 영적 성찰이 그로 하여금 벳새다를 소돔보다 더한 지옥구덩이로 떨어지게 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pp.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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