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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아이리스창 - 2014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by 이니샬라 2022. 10. 8.

“극동국제군사재판 도중에 수천 번도 더 ‘세상에’라는 감탄사가 홀러나왔다'’라고 아놀드 브랙먼은〈또 다른 뉘른베르크 : 도쿄 전범 재판의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에서 밝힌 바 있다. 재판 도중 일본인이 아시아 전역에서 저지른 끔찍한 행위들이 수천 번이나 자세히 소개되었다. 여기엔 신문기자, 조사, 통계, 목격자 증언 등이 포함되었다. 극동 국제군사재판에서는 난징에서 벌어진 학살뿐 아니라 일본이 아시아 전역에서 자행한 갖가지 끔찍한 행위에 대한 증언이 나왔다.
일본군은 포로들을 생체 실험에 이용했을 뿐 아니라 굶주린 포로들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행군을 시키거나 (악명 높은 바타안 행군) 태국-미얀마 접경지대의 철도 건설에 포로들을 투입하기도 했다. 이때 장이 터질 때까지 석유를 코에 강제로 붓는 ‘물고문’이 행해졌고, 관절이 빠질 정도로 손목, 발목, 다리를 잡아당기기도 했다. 뾰족한 물건 위에 무릎을 꿇게 하거나 손톱을 잡아 뽑거나 전기 고문을 하거나 여자들을 벌거 벗긴 후, 뜨거운 난로 위에 앉게 하는 등 상상할 수 없는 온갖 고문을 가했으며, (일본군 헌병들은 포로를 나무에 묶어놓고 둘러싼 후 포로가 죽을 때까지 발로 차기도 했다. 일본군은 이런 고문을 ‘삼면 공격’ 또는 ‘삼차원 공격’이라고 불렀다.) 심지어는 생체를 해부하거나 인육을 먹기까지 했다. 이와 같은 일본군의 전쟁 포로에 대한 처우는 그 야만성에 있어 나치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다. 나치의 포로가 된 미국인은 25명당 1명 꼴로 목숨을 잃었지만, 일본군의 포로가 된 미국인은 3명당 1명이 죽음을 당했다.
극동국제군사재판의 하이라이트였던 난징의 강간은 일본군의 행위를 집약적으로 잘 보여준다. 극동국제군사재판을 취재하던〈유나이티드 프레스〉의 신참 기자 브랙맨은 “난징의 강간은 모든 전쟁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다. 또한 일본 정부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난징의 강간이 세계 언론의 1면을 장식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이 재판이 열리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pp. 250-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