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생물 과학에 있어 성경은 기능적 권위를 상실하고 있다.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다. 1800년대 콜레라의 전염이 이런 상실의 전환점이었다. 1832년과 1849년, 두 차례의 전염병이 일어났을 때, 교회는 이 전염병에 대한 권위 있는 해석가이자 상담가로 여겨졌다. 그러나 슬프게도 교회는 이처럼 특권적인 지위에 있으면서도 단순하고 불충분한 해석을 시도했다. 대개의 경우 교회는 콜레라의 창궐을 죄에 대해서 하나님이 내리시는 징벌의 증거라고 설명했다. 이 설명은 상당히 유용했다. 왜냐하면 콜레라에 주로 감염되는 사람들은, 전형적인 교회 참석자들인 재정적으로 안정된 중산층이나 부유층이 아니라, 대개 하류층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질병이 하나님의 징벌의 결과일 수 있으며, 영혼의 자성과 회개의 필요성을 일으키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개인적인 죄와는 무관한 것일 수도 있다. 사실 병을 언제나 개인적인 죄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것은 실제로 욥과 그의 조언자들로 거슬러 올라가는 아주 오래된 이단이다. 그렇다면 1800년대의 교회들은 죄와 질병이 반드시 연결되어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왜 가르치지 않았는가? 왜 교회는 전염병에 대해 더욱 완전하게 이해하도록 창조된 세계(비록 타락했다고 할지라도)에 대한 정확한 연구들을 고양시키지 않았는가? 당시 교회의 신학적 렌즈가 정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성경의 부정확한 적용은 마침내 종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1866년에 콜레라가 일어났을 때, 교회를 향해 도움이 되는 대답을 요청하는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 대신 핵심은 공중 보건의 주도권 아래로 이전되었고, 아울러 성경의 합법적인 지배 영역은 축소되었다. 과학 위의 성경이라는 개념 대신 과학이 스스로의 왕국을 지배하면서 그 왕국의 아주 작은 최소한의 영지가 성경에 할당되었다.
"그래도 하나님은 아직 천국에 계신다고 하면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신속히 긍정 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더 이상 미국인의 삶에 중심이 되거나 뜻있는 실재가 되지는 못하고 있었다. 지각 있는 성직자들이 1832년에 한 경고가 올바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전 세대들의 영적인 관심이 소멸되었다기 보다는 물질적인 관심과 실증적인 사고 습관이 영적인 관심을 대체했다. 미국인들은 ‘실용적 무신론자’의 나라가 되어가는 도상에서 잘 살고 있는 듯이 보였다."
pp.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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