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선언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 명료한 진리는 인간의 욕망과 결합될 때 은밀하게 왜곡되곤 한다. 우리는 어느덧 하나님을 ‘내 계획에 협조하시는 분’으로 여기며, 그분의 사랑을 ‘내 뜻을 이루어 주어야 할 의무’로 바꿔치기한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항상 내 삶의 형통을 보증하는 수단으로 읽힐 때, 복음은 본래의 빛을 잃고 만다.
이런 왜곡은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에서 시작된다. 고난 앞에서 사람은 이유를 찾고 싶어 하며,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싶어 한다. 이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은 달콤한 위로가 된다. 문제는 위로가 확증으로 변할 때 발생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내가 바르게 살면 당연히 나를 성공시켜 주실 것”이라는 논리는 매우 매력적이다. 이는 신앙을 일종의 거래로 만든다. 선행은 보상을 낳고 실패는 불순함의 증거가 된다는 식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일이 잘될 때는 자만심을, 일이 꼬일 때는 하나님을 향한 분노와 환멸을 낳을 뿐이다.
여기서 다윗의 기도는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소서”라는 고백은 단순한 자기반성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 깊숙이 숨겨둔 이기적인 동기를 하나님 앞에 발가벗기는 용기다. 이 기도를 진지하게 드릴 때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내 계획에 협조하는 하나님’이라는 거짓에 매달려 왔는지를 말이다. 다윗의 기도는 우리를 불편한 거울 앞에 세우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진정한 회복의 시작점이 된다.
복음의 본질은 거래가 아니라 관계이며 구속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공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은 존재로 빚어가기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 신앙은 결과에 대한 보증을 요구하는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만들어 가시는 과정에 참여하는 태도여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시적인 편안함보다 우리 인격의 성숙에 더 큰 관심을 두신다. 이 관점을 가질 때 고난은 단순한 불운이 아니라, 우리를 정화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통로가 된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를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는 방식으로 일하신다. 그분의 사랑은 우리가 이해하는 방식에만 갇혀 있지 않다. ‘내 뜻대로 움직여야 하는 하나님’이라는 틀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진짜 평안이 찾아온다. 이는 현실의 고난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나를 빚어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묵묵히 걸어가는 삶의 방식이다. 신뢰는 결과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매일의 순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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