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나라에서 살면 나도 행복할까?》에 따르면, 한국의 명동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돈이나 좋은 자동차 같은 물질적인 요소가 당신에게 의미하는 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지자 이런 대답들이 나왔다고 한다.
“솔직히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고, 눈치 보지 않아도 되잖아요. 돈이요? 완전 많이 벌고 싶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돈이 없으면 고생만 하고 재미없게 살아야 하잖아요. (.…) 제 사업 해서 돈 많이 벌고 싶어요."
“좋은 집이나 좋은 차요? 완전 갖고 싶은데요? (웃음) 나중에 결혼해서
제 가정을 꾸렸을 때 좋은 집에서 좋은 차 타면서 살고 싶어요. 그럼 행복할 것 같아요."
명동 거리를 오가던 사람들은 대부분 돈이나 물질적 풍요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것이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과는 사회제도가 상당히 다른 나라들, 특히 행복 순위가 높은 나라들에서 같은 질문을 던지자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물질적인 건 별로 의미 없어. (…) 돈은 그저 사람들을 타락시킬 뿐이야." (아이슬란드)
"(...) 풍족하지는 않아도 지금도 이 집에 사는 가족들이 함께 먹고 지내
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내게 돈은 그리 큰 의미는 아니에요." (바누아투)
"물론 돈은 참 중요하지. 돈이 있어야 원하는 걸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보다 나한테 더 중요한 건 사회적인 관계야." (덴마크)
돈이 곧 행복이라는 물질주의 행복론은 개개인이 자신의 생존을 책임져야만 하는 각자도생의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 공동체가 해체되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홀로 분투해야만 하는 사회에서 지배적인 믿음이 된다. 《풍요중독사회》에서 자세히 했듯이, 돈을 벌지 못하면 생존이 불가능한 사회, 돈을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고 차별하고 무시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생존 불안'과 '존중 불안'에 시달린다. 그 결과 사람들은 돈이 없으면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돈을 많이 벌어야만 존중받으면서 사람답게 살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돈은 행복과 별 관련이 없다고 말하면 "한국에 살
고 계세요?"라고 면박을 당하기 십상이다. 반면에 물질주의 행복론은 국가나 공동체가 개인의 생존을 책임지는 집단주의적인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 공동체가 건재해서 경쟁하기보다는 협력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지배적인 믿음이 되기 힘들다. 12년 째 덴마크에 살고 있는 한 미국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인은 대체로 물질주의적입니다. 성공은 곧 돈이고,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성공하면 큰 차와 큰 집을 사죠. 그런데 덴마크 사람들은 그렇지 않더군요. 물질주의와 반대죠. 내가 루이뷔통 가방을 가지고 있어도 이곳 사람들은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았어요. 덴마크인 남편과 살면서도 나는 여전히 돈으로 행복을 찾으려고 했으니 헛일이었죠."
덴마크와 같은 북유럽식 사회제도를 선택한 사회는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국가가 개인의 생존을 상당 부분 책임진다. 직업에 따른 소득 격차도 크지 않아서 돈에 따라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고 차별하며 무시하는 풍조가 거의 없다. 한마디로 생존 불안과 존중 불안이 심하지 않다. 아이슬란드와 덴마크 같은 북유럽식 사회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 바누아투처럼 공동체가 건재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물질주의 행복론을 믿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질주의 행복론은 기본적으로 옳지 않은 엉터리 행복론이다.
하지만 돈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믿음은 사회제도에 따라 달라진다. 한국과 미국 같은 신자유주의적 사회제도를 채택한 나라에서는 돈이 행복에 상당한 영향-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돈 자체가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을 미치기 때문에 물질주의 행복론이 활개를 친다. 반면에 북유럽식 사회 제도를 채택하거나 사람들이 공동체 속에서 화목하게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돈이 행복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물질주의 행복론은 지배적인 행복론이 될 수 없다.
pp. 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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