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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김선주 - 2023 기독교인은 왜 악을 선택하는가

by 이니샬라 2025. 6. 5.

 

문장은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낙엽을 주워 들여다보는 손길이 있다면, 그 안에는 계절의 냄새와 땅의 온도가 담겨 있음을 알게 된다. 글도 마찬가지다. 한 줄의 문장은 그 자체로는 기호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읽는 이의 눈과 마음이 어떻게 머무르느냐에 따라 위로가 되기도 하고, 무거운 쇳덩이가 되어 누군가의 어깨를 짓누르기도 한다. 저자는 문해력 없는 신념은 개인의 내면을 갉아먹을 뿐 아니라 공동체의 숨결을 병들게 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문해력은 단순한 읽기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텍스트와 대화하는 태도이다. 문자를 해독하는 기술을 넘어, 그 기호들이 놓인 역사적 맥락과 언어적 관습, 저자의 숨결과 독자의 삶을 함께 읽어내는 능력이다. 특히 성경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다양한 문화과 녹아내린 텍스트이다. 그러므로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지닌 무게를 헤아리고, 그 말들이 어떤 시대적 의미를 있는지 살펴야 한다.

 

또한 문해력은 질문을 던지는 용기다. 텍스트의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말의 뿌리와 파장을 곱씹는 작업이다. 그 안에 숨은 맥락을 읽어내는 눈이 없으면 독단으로 빠지게 된다.

 

무지한 확신은 겨울의 얼음처럼 단단하다. 특히 권위를 가진 사람이 문해력 없이 신념을 설파하면 그 말은 사람들의 삶을 흔들고 때로는 상처를 남긴다. 목회자의 말이 곧 삶의 지침이 되는 공동체에서는 더욱 그렇다. 말의 무게를 헤아리지 못한 채 던져진 단언은 위로가 아니라 폭력이 되기도 한다.

 

이런 위험을 막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깊은 이해이다. 오히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 무엇을 우선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모든 글은 우리에게 답을 주기도 하지만,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질문이 내게 다가올 때에 두려워하지 않아야 자기 확신이 아니라 자아 성찰로 이어진다. 우리는 텍스트 앞에서 겸손해야 하며, 말의 무게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신념은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든든하게 세워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