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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울프 - 2016 문제적 인간 다윗 자그마한 다윗은 소국이지만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은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약자가 어마어마한 강자를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의 배후에는 하느님의 총애가 있다. 아우가 큰형을 이기며, 약소국이 강대국을 이길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이의 예상을 뒤엎고 약자가 승리할 때 비로소 하느님의 능력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p. 43. 2020. 10. 3.
랭던 갈키 - 2015 산둥 수용소 모든 인간은 온전해지기 위해 각자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의 용서라는 은혜가 필요하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고, 내 인생에서 지속적으로 얻게 되는 교훈이었다. p. 16. 2020. 10. 3.
한스 큉 - 2001 그리스도교 본질과 역사 그리스도인 실존은 모든 긍정적인 것뿐 아니라 온갖 부정적인 것, 고통 • 죄 • 무의미 • 죽음까지도 자신의 능력이나 성공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에 의지하는 흔들리지 않는 하느님 신뢰에 터하여 극복할 수 있는 인본주의를 실천하고자 애쓴다. p. 78. 2020. 10. 3.
백소영 - 2013 세상을 욕망하는 경건한 신자들 중세 말기 교회가 소유한 토지가 유럽 전체 땅의 3분의 1에 육박했다. 예수는 오래 전 제도 종교의 막판 끝을 보여주던 성전 중심 유대교를 향해 ‘어느 아비가 제집 드나드는 아들들한테 세금을 받더냐?’라며 비판했건만, 유대교라는 제도 종교를 개혁하며 나와 새로이 시작한 기독교도 노화되니 이 모양이었다. 신도 수에 프리미엄을 얹어 성당의 사제직을 사고파는 일이 빈번했다. 더 많은 지역교회 건물을 소유한 성직자일수록 벌어들이는 수입이 많을 터. 결국 요즘의 금융자본주의 세계에서 자고 나면 불어나는 투자수익을 주체할 길이 없어 어린 손자 손녀에게까지 부를 나누어 놓는 졸부들처럼, 중세 유럽에서 산다하는 귀족들은 한 사람이 성직을 서넛 중임하거나 예닐곱 먹은 집안 자식의 이름까지 명목상 사제로 걸어두는 일들이 .. 2020. 10. 3.
린들 로퍼 - 2019 마르틴 루터 - 인간, 예언자, 변절자 우리의 주님이며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 4:17) 등을 말씀하셨을 때, 신자의 전체 삶이 회개하는 삶이 되기를 그분은 원하셨다. p. 24. 2020. 10. 3.
권재원 - 2016 학교라는 괴물 공교육은 직업인을 길러 내기 위한 교육이 아니다. 학교는 학생들이 변호사, 의사, 교사, 혹은 그 밖의 현재 존재하는 어떤 특정한 직업인이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학교는 학생들이 현재 자신의 가능성과 역량을 확장시킴으로써 스스로의 미래를 개척하고 창조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학생들은 현재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직업을 갖기 위해, 혹은 현재 어른들과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p. 32. 2020. 10. 3.
글배우 - 2017 아무 것도 아닌 지금은 없다 진짜 어른은 자신이 원하는 자유를 선택하고 선택한 만큼의 책임과 두려움을 짊어지는 사람이다. p. 33. 2020. 10. 3.
도로시 허먼 - 2014 헬렌 켈러 “말의 가치는 뜻을 전하는 데 있는 것이지 완전하게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세월이 흐른 뒤 헬렌은 시각-청각장애 여성으로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이렇게 표현했다. “시각-청각장애인이 정상인들의 세상에서 사는 것은, 자기가 사는 것과 딴판으로 사는 외딴 섬에 버려진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는 섬사람들 사이에 뱃사람 혼자 섞여 있는 꼴인 것이다. 뱃사람은 혼자이고 섬사람들은 많다. 타협할 거리조차 없는 것이다. 뱃사람은 섬사람들의 눈으로 보아야 하고, 섬사람들의 귀로 들어야 하고, 그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그들의 이상을 따라야 한다.” p. 57-58, 96. 2020. 10. 2.
G. K. 체스터튼 - 2016 정통 우리가 기적을 논의에서 배제시키는 것은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예외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p. 126. 2020. 10. 2.
헬렌 켈러 - 2013 사흘만 볼 수 있다면 들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아는 사람은 귀머거리뿐입니다.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채로운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지는 소경밖에 모릅니다. 특히 후천적인 이유로 청각이나 시각을 잃어버린 사람이라면 더욱 감각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하지만 시각이나 청각을 잃어본 적 없는 사람은 그 능력이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도 못합니다. 그들의 눈과 귀는 집중하지도 않고 감사하는 마음도 없이 그저 무덤덤하게 풍경이며 온갖 소리를 받아들일 뿐입니 다. 무릇 가진 것을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알고, 병에 걸린 다음에야 건강의 중요함을 깨닫는 법입니다. p. 21. 2020. 10. 2.